Day 38

빌라도와 예수님 (마 27:11-26)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 가운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장면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느냐 혹은 놔주느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근데 여기에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언급하는 빌라도가 등장을 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빌라도가 정말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언급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다가, 예수님이 죄 없으심을 깨닫고 자신의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라고 말한 사람일 뿐인데 말입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옳은 길이 아니란 것을 알았지만, 그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게 무슨 문제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 23절에 보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보다는 계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만 외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은 사사기에 기록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빌라도는 옳은 결정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준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죽을 죄에서 고난 받을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택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행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보다 더욱 잘아시며 더욱 사랑하시는 분>이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으라>라고 외칠 때에도, 묵묵히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길을 걸으신 것입니다.

한국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는 마지막 예배때에 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마지막으로 전해주셨습니다. <교회를 필요로하는 목회자가 되지말고, 교회가 필요로하는 목회자가 되어야한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확실하게 이해가 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서 우리를 이용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진 다는 것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순절 서른여덟 번째 날에는 내가 필요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기 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귀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